KSS와 KSNS, 무엇이 다를까요? 스본스도의 핵심 개념 바로 알기

스본스도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혼란이 있습니다. 바로 KSS와 KSNS라는 두 핵심 용어의 혼용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넘어, 스본스도의 철학과 체계에 대한 깊은 오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숙련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KSNS를 스본스도의 행위(테크닉) 자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발견됩니다.
그러나 두 용어는 김세연 교수님께서 명백히 구분하여 정의한,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스본스도의 깊이를 더하고 창시자의 뜻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해, 우리는 KSS와 KSNS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두 용어의 정확한 정의와 올바른 활용법을 제시하여, 스본스도 커뮤니티 내의 오랜 혼동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KSNS (Koreaner Kim’s Schutz Nerven System): '이론의 토대'가 되는 신경계
KSNS는 '이론' 이자 '발견' 이며, 우리 몸에 실재하는 '신경 시스템의 명칭' 입니다.
- 정의: '한국인 김씨가 발견한 몸을 보호하는 신경 시스템' (몸을 보호하는 무의식 신경구조)
- 개념: 김세연 교수님께서 그의 저서 『새로 발견된 자연의학의 이론과 실습 K.S.S.』의 표지에서부터 명시했듯이,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이론적으로 정립한, 인체의 균형과 건강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하고 보호하는 독자적인 신경 시스템입니다. 이는 스본스도라는 학문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적 토대입니다.
- 역할: 우리가 연구하고 이해해야 할 '대상' 이자 '하드웨어' 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KSNS는 컴퓨터의 '운영체제(OS)' 또는 건물의 '전기 배선 시스템'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핵심 기반입니다. 우리는 KSNS라는 시스템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핵심: KSNS는 행위(Technique)가 아니라, 우리 몸에 존재하는 신경계의 이름입니다.
KSS (Koreaner Kim’s Sbon Sdo): '실천 방법론'이 되는 테크닉
KSS는 KSNS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실천 방법론' 이자 '테크닉의 총칭' 입니다.
- 정의: '한국인 김씨의 스본과 스도'
- 개념: KSNS 이론을 바탕으로, 질병의 근본 원인을 찾는 '스본(Sbon)'과 몸의 자연 치유력을 회복시키는 '스도(Sdo)'의 과정을 합친 구체적인 실천 방법론입니다.
- 역할: KSNS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 이자 '소프트웨어' 입니다.
KSS는 비유하자면, 오작동하는 운영체제(KSNS)를 진단하고 복구하는 '응용 프로그램' 또는 노후된 전기 배선(KSNS)을 점검하고 수리하는 '기술자의 구체적인 작업(The Work)'과 같습니다.
핵심: KSS(스본스도)는 KSNS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위(Technique)입니다.
왜 이 구분이 중요한가?
학문적 정확성:
용어를 정확히 사용해야 스본스도의 학문적 깊이와 전문성이 바로 섭니다. 이론(KSNS)과 실천(KSS)을 구분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기본입니다.
명확한 소통:
스본스도를 가르치고 배울 때, "KSNS를 한다"가 아닌 "KSS를 통해 KSNS를 다스린다"라고 표현해야 학습자가 혼동 없이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시자의 의도 존중:
김세연 교수님께서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여 명명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구분을 지키는 것이 그의 학문적 유산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길입니다.
올바른 표현 바로 알기
- 잘못된 표현: "오늘 KSNS 치료를 받았다."
- 올바른 표현: "KSS(스본스도)를 통해 KSNS의 균형을 되찾았다."
- 잘못된 표현: "나는 KSNS 테크닉을 구사한다."
- 올바른 표현: "나는 KSS(스본스도) 테크닉으로 인체의 KSNS에 작용한다."
- 잘못된 표현: "KSNS는 통증을 완화시킨다."
- 올바른 표현: "KSS(스본스도)는 KSNS를 안정시켜 통증을 완화시킨다."
결론: 이론의 집(KSNS)과 그 집을 짓는 기술(KSS)
KSNS는 우리가 탐구해야 할 위대한 '이론의 집'이며, KSS는 그 집을 정성껏 짓고 보수하는 '장인의 기술'입니다. 기술의 이름으로 집 자체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명확한 구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여, 김세연 교수님께서 남기신 위대한 학문적 유산을 올바르게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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